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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7-07-02 21:53 수정일: 17-07-02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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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2017년 7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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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은진목사
 조회 : 6,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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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여 전 동부에서 목회하다 시애틀로 목회지를 옮긴 한 친구목사 가정이 우리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 친구는 찬양음반까지 낸 경력이 있는 오래 된 내 친구 김영수목사입니다. 86학번 신학교 동기로 졸업 후 27년 만에 만나게 된 것입니다.
큰 키에 깔끔한 쟈켓을 즐겨 입고 어깨에는 항상 키타를 매고 캠퍼스교정을 거니던 친구였습니다. 1987년 기독교방송에서 주최한 복음송경연대회에 출전 해 3등에 입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끼묻은 바윗돌 허물지 않으시고 사랑해 주신 주님 은혜를 감사해”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사랑의 예수님’이라는 창작곡이었습니다. 그 때 흥얼거리던 가사를 지금까지도 흥얼거리고 있습니다.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까먹지않고 말입니다.
신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가 목회하시던 경남 고성에 키타 하나 매고 저를 보러 내려왔습니다. 마침 교회에서는 여름성경학교를 시작할 무렵이라 아이들에게 찬양을 가르치며 섬겨주기도 하였습니다. 일주일 가량 친구와 함께 먹고 자며 이야기꽃을 나누었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졸업 후 캐나다로 이민오면서 한국에 있던 동기들과는 거의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그 때만 해도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각자의 생활에 바쁘기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중에 잊을만하면 가끔씩 저에게 연락을 주던 몇 친구들이 있었는데 김영수목사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졸업 후 10년이 지난 쯤 미국 캘리포니아에 와서 목회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참 후에 찬양음반을 내고 찬양집회를 인도하는 사역자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미국 몇 도시들을 순회하면서 찬양집회를 하는데 친구가 있는 캐나다도 방문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때는 우리교회가 가정교회로 막 전환하던 때였습니다. 우리교회의 목회적 상황과 친구의 일정이 잘 맞지않아 그 당시에는 초청건이 유야무야 되었습니다. 이 후 김영수목사가 미 동부 달라스로 목회지를 옮기게 되었고 또 10여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번에 동부에서 다시 서부 시애틀 근교로 하나님이 목회지를 옮겨주시면서 연락이 왔습니다. 먼 길을 가족들이 자동차로 횡단하여 온다고 했습니다. 안전한 여행을 위해 서로 기도하면서 드디어 도착하여 짐을 풀고 저를 만나러 이 곳 밴쿠버로 올라 온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약간 늦게 도착하여 뒷자리에 앉은 친구모습을 강단에서 27여년 만에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옛친구 모습에 순간적으로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져 얼른 고개를 돌렸습니다.
갑자기 부탁한 특송요청에 흔쾌히 나와 변하지 않은 목소리와 감성, 거기에 영성까지 더해 져 흘러나오는 찬양에 온 성도가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셔서 8웛 중순 경 정식으로 김영수목사 초청 찬양집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목사라는 직함으로만 불리우다 ‘은진아’, ‘영수야’ 라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경험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먼저 연락한 적 없는 저를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연락의 끈을 놓치않고 찾아 준 친구가 고맙습니다.
친구가 첫 음반을 발간하였을 때 자신의 아들,딸을 비롯해 이 음반을 꼭 주고싶은 사람 다섯이 있어 따로 싸인을 해서 빼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 음반 중 하나를 저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음반표지에 “사랑하는 귀우 은진에게, 영수”, 그리고 그 아래에 사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인 아래 적혀있는 날짜가 저를 먹먹하게 했습니다.
“2010.5.”
그 때 주려고 고이 간직하고 있던 음반이 17년만에 제 손에 들려진 것입니다. 좋은 내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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